가장 정직한 사람은 남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들 앞에서는 휴지통을 열심히 찾던 사람이 보이는 눈이 없는 고속도로에서는 갓길로 쓰레기를 냅다 던져 버리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윗사람이 지나갈 때면 유독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저녁 늦게 어른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책상에 앉아 정말 잠깐의 몰입으로 깊은 학업의 삼매경으로 빠져 보이기도 하는 것이 보통의 제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육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신비의 기술은 사람을 변하게도 합니다. 한정조사를 쓴 것은 변하지 않는 경우, 또는 반발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에 우리는 방점을 찍고 무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투자되는 것은 회수률 또는 투자수익률같은 산술적인 세속 계산은 빠집니다. 


조금 더 훈육되어지면 외부의 자극이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법을 알게되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니,

조금 가벼운 책임이 따르는 '예법'으로 얘기를 돌려볼까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고 함께 사느는 방법 중 하나가 '예절'이라는 것인데, 이는 익혀야 되는 것이고, 남과 또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물 두 컵과 빵 두 조각을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자기의 몫으로 음식을 나누는 것이 에티켓이겠지요. 조금 더 나가면 두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먼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어떤 자리에 앉아야 서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즐거움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조금 높은 수준의 '예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ENZ 2011 C300 4MATIC 이 차를 타고 두 부부가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다면 여러분의 배우자는 어느 곳에 앉아있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주 사람이 많은 공간으로 나가서 우리의 행동을 돌아봅시다. 오늘 식재료를 구입하러 마트에 나갔다가 뒤에서 돌진하는 아주머니 카트에 내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또 다른 아주머니의 카드에 내 왼쪽 아킬레스건이 자지러지도록 수축과 팽창의 고비를 넘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힘없이 주저앉은 저의 연약함이 허리우드 액션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안하다는 얘기를 범죄인정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아주 드문 일이 아닌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은 바로 가식이 아닌 정직함의 시작입니다. 그래도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데, 한 하늘아래에 살고 있는데,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가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부정직한 발상에 경고하고 싶습니다. 


예전보다 교육수준이 높아졌다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자랑하는 모두 큰 공부했다는 요즘, 
이렇게 예절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교육과정의 파행으로 돌려야 할까요?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두고 단편을 들어 이러니 저러니 판단하는 어처구니는 신내림을 받은 영적인 존재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지요. 정직하려면 본인의 아닌 남의 얘기로 단편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속으로는 정직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정직해지는 첫걸음이고 옳은 판단을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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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kim_kr
다음 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네 권의 책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어느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매일매일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30년 후가 기대되는 삶》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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