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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라면 약속에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2016.12.31 18:30

장수사진 봉사 장면이 찍힌 사진입니다. 액자 제작 약속이 늦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쓰지 못한 죄송함이 기억됩니다.


"우리 밥 한 번 먹자!"라는 얘기를 곧이듣는다면 현대인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으면 "밥 한 번 먹자!"라는 얘기는 지나가는 인사랍니다. 이렇게 새로운 코리안 예절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약속시각에 늦게 나타나는 '코리안 타임'이 한국의 고도 성장기의 장애요인이라고 해서 사회운동으로 약속 지키기가 번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교양있고, 지성 있는 사람이라면 약속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행위라는 것에 공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천하는 생활양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코리안 타임'이 약속시각을 잘 지키는 용어로 생각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약속을 지키는 실태를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시간을 지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춘 남녀의 데이트에서 여자가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이 비싸 보인다는 편견으로 작동하는 경우입니다. 남자 친구에게 애타게 기다리면서 기대를 고조시키는 방법은 가히 동물적입니다. 속자는 남자 친구를 애타게 기다리게 하면 결국 결혼 뒤에 남편은 늦은 귀가와 외박으로 보복을 감행한다고 합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슬픈 속담과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밥이 더 맛있게 하는 방법은 배가 더 고프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얘기입니다. 아주 배가 고파서 밥을 먹게 되면 맛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허기를 채우는 것이기에 맛과는 기준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며칠 굶은 걸인에게 제공되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도 양해가 되는 부류가 있습니다. 대체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약속에 대해서 관대한 편입니다. 데이트를 막 시작한 두 젊은이 중 여자 쪽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고, 직원보다는 고객이, 부하 직원보다는 상사에게 약속에 대한 이행 강요가 적은 편입니다. 인간은 법 앞에서만 평등한가요? 아무튼, 약속에 대해서 평등하지 않은 계층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회사의 전체 임원이 참석하는 특강이 있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미래를 잘 헤쳐나가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나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말라고 강경한 어조로 강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마도 최고경영자의 요청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뒷얘기로 끝났습니다. 최고경영자는 훌륭한 강사로부터 회사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강의가 진행되었음을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다음 강좌를 희망하셨습니다. 특정 강사와의 섭외를 지시하였고, 실무자들은 일정과 주제 그리고 비용과 의전까지 세세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 당시 지목한 강사는 아주 유명하고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지라 일정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다른 강의를 희생하고 이에 따른 비용보상까지 보장하고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시 사항을 따른 일정 계획이 보고되었고, 참석 임원들에게 일사불란하게 공유되어 철저한 사전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과정 때문에 중요한 일정을 변경한 임원도 몇 분 있었습니다. 차마 대승적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 이의가 없었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1주일 전에 갑자기 취소하라는 통보가 내려왔습니다. 보통 이럴 때 '사유'를 달지는 않습니다. 실무자는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강사에게 취소 확인을 받게 됩니다. 사유에 대해서는 피치 못할 중대한 사안 때문으로 각색되기 마련입니다. 그 정도면 실무자에게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통상 업무가 됩니다. 이유 불문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사유 없는 재시행을 명령받는 것입니다. 꼭 진행하고 싶다는 코멘트가 붙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그 강사를 다시 섭외해 냅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이어질까요? 또 약속을 취소하라는 명이 내려옵니다. 그 일을 맡았던 실무자가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약속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강요하고 변경시키는 제왕적 근무환경을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말릴 수도 없는 확고한 신념으로 떠납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윗사람들의 무심한 반응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제왕적인 회사라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약속이고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지 구분하지 않고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번듯하고 알만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흔한 풍경입니다. 


개인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을 때, 조건을 조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구한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이적하겠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나를 끌어가려는 분이 조정자가 되었습니다. 워낙 오랜 관계를 유지했던 윗분이라 서면 확약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회사를 떠날 때까지 한 가지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둘만의 약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도 그 약속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고, 그는 기억조차 지워버렸을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지켜지지 않게 된 이유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어디 이런 일이 한 번만 있었겠습니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금전적으로 치면 한 시니어를 통해서만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3억 원은 족히 되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그리고 시니어이기에 이유나 설명 있는 변경사유에 대해서 소상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경우는 서울에서 하늘의 별 보기 만큼 드물었습니다. 참 인정하고 싶지만 자리 잡고 있는 안타까운 한국적 정서 중 하나입니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수시로 이유 없이 약속을 취소하고 변경했다고 공영방송에서 지탄합니다. 공분의 요소를 또 하나 만들고 탄식을 거듭합니다. 시니어가 약속을 지킬 것을 믿고 백성과 직원은 그 약속에 목을 매고 있고, 그들끼리는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시니어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시니어들은 하찮은 백성이나 하급 직원도 약속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랫사람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의를 운운하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새해라고 계획을 세우라고 몰아세웁니다. 계획도 일종의 약속입니다만, 시니어가 약속을 먼저하고 지켜나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성도 없이 이모티콘으로 전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처럼 건성으로 보내는 것과 다를 것입니다. 누구나 낮아지기를 희망하거나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모두는 시니어이거나 예비 시니어입니다. 


시니어라면 약속에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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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학번, (19)82학번. 두 82학번 동창의 같은 점과 다른 점

2016.12.30 13:37

같은 공연을 두 곳에서 진행합니다. 첫날 공연은 예배하는데 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둘째날 공연은 좌석이 남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같은 공연도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이 세상에서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전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지금으로 말하면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는 200명이라는 숫자의 대대적인 인재선발을 하게 됩니다. 바로 1582년 임오년입니다. 이때 시험을 사마시(司馬試)라고 합니다. 사마시는 소과(小科)라고도 부르는데, 소과를 진사시, 사마시를 생원시라는 고려시대의 국자감시(國子監試)와 승보시((陞補試)를 계승한 것입니다.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당시 최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고, 하급관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사마시는 벼슬길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균관에 다니며 더 큰 공부를 하여 대과(大科)에 합격하면 요즘과 같은 고시(考試)에 합격한 것과 같은 영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과 합격자’는 국가고시를 통해 사족(士族)의 지위를 공인받는 신분이었다. 벼슬길에는 올라가지 못해도 평생을 ‘생원’ 혹은 ‘진사’의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양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바로 생원·진사였던 것입니다. 또한 별다른 배경이 없는 이들에게 ‘사마시 동기’는 관직생활을 위한 든든한 인맥이었습니다.  


오늘날 서울대 입학시험과 같았던 임오년 사마시 합격자들은 대단한 관운을 타게 됩니다. 이것을 증명할 그들의 동창회 모임이 그림으로 남아있는데, 1630년에 그려진 송년회 그림 '임오사마방회첩(壬午司馬榜會帖)'을 보면 확인히 알 수 있습니다. 모인 8명 가운데 3명이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정승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634년, 일흔살이 넘는 고령이었는데도 윤방과 김상용이 영의정과 우의정에 올랐고, 4년 전 영의정이던 오윤겸은 좌의정으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 확인 됩니다. 한 ‘학번’에서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3정승을 동시에 배출했으니 동기회의 위세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임오사마방회첩(壬午司馬榜會帖)' 서문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같이 합격한 이들 가운데 정승이 하나 나오기도 힘든데…. 우리는 셋이나 동시에 정승이 되어 지금 이 모임에서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네 그려.” 

“그렇지 아마도 전무후무한 희한한 사건일 것이야.” 

“그래. 나라의 삼정승이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 가운데 똑같이 나와 지금 한 방에서 회동하고…. 또 모두들 높은 수명을 누리고들 있으니….” 

“아!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겠는가.” 

“그렇지. 우리 동기들은 가히 인재의 복록(福祿)이야. 아니 그런가?” 

“아무렴 아무렴.”


저희 집안 어르신도 당시 임오사마시에 합격생이시더라구요. 26세손이신 자 숙무, 호 옥봉이신 몽자 호자이십니다. 명종 12년인 1557년에 태어나셔서 25세 되시는 1582년 선조 15년에 임오사마시에 합격하시고, 1637년 인조 15년에 81세로 세상을 뜨신 것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설사별좌에 출사하여 직장, 공조 호조 좌항을 거쳐 광해군 원년인 1609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주관을 겸하여 춘추서장과, 예조좌랑, 평안도도사, 형조정랑,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 여러 관직을 거쳐 1613년 정언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장령에 승진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임오사마방회도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았으나, 방회도에 나오는 인물 한 분이신 우복 정경세와 교류하신 기록은 족보에 나와 있습니다.


당시 하수일의 삼청동방회서(三淸洞榜會書)의 서문을 보게 되면 당시 동기인맥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부탁할 친구도, 받아들여 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급제한 자를 게시하는 방(榜) 위에 걸리는 이름들은 한평생을 벼슬길에서 형제 사이처럼 지낼 사람들이다. 금세 만났지만 그 정은 마치 오래 사귄 친구 같고, 처음 모였는 데도 모든 이의 각오는 쇠(鐵)를 자를만큼 굳고 든든하다.”


저는 1981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82학번은 저보다 한 해 뒤에 입학한 후배격인 셈입니다. 저희 81학번 나이때 동창은 82학번에 비해서 화려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대학교 1982학번의 동창은 어떨까요?  우연의 일치인지 임오사마시처럼 1982년의 서울대학교는 역사장 가장 많은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한다.'는 졸업정원제에 따라 졸업정원의 130%가 입학했던 것입니다. 82학번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습니다. 타학년보다 인원이 많은 데다 서로 친밀감이 높아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그래서 보기 싫다는 의미와 82라는 숫자를 연음으로 하여 '똥파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1582년과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82학번은 2016년 한국사회 곳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계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라고 이름을 지목하지 않아도 굉장히 많은 의원이 포진해 있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김난도 교수, 진중권 교수 등 학계에서도 유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점 또한 공통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얼마만큼 끈끈하게 서로 결속력을 갖고 있는가를 비교해 봅니다. 1582년 합격 당시 최연소자는 19살이었던 윤흔이었고, 최고령자는 27살의 이배적이었습니다. 또한 윤방과 윤흔은 형제간이었습니다. 모인 12명 가운데는 정경세의 입학성적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는 약관 20살에 생원시에 2위를 차지했고, 4년 뒤인 1586년(선조 19년), 문과 알성시에 24살의 나이로 을과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합격 49년만에 동기 모임인 방회(榜會)를 열고는 70세가 되어서 젊은 날을 회고하며 악사도 도우미도 부르지 않은 간소한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국무총리 격인 영의정과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참봉이 함께 술을 마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동기모임이었지만 술자리의 서열은 철저했던 것 같습니다. 품계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술잔을 기울일 때는 격의가 없었습니다. 1634년 두 번째 방회도에는 연사의가 새로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사의의 직책은 가장 말직인 오늘날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참봉’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 윤방 등 고관대작 동기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술잔을 나눴습니다. 1982학번은 격의없는 송년회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점은 1582학번과 1982학번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81학번 동창들과 송년회를 합니다. 방회첩을 만들 것은 아니지만, 조촐하게 음식을 나누고 송년음악회에서 음악감상을 하면서 격의없이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이점은 1981학번과 1982학번이 왜 다른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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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치(stretch)와 레버리지(leverage)

2016.12.29 23:34

SONY | CYBERSHOT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285sec | F/4.0 | 0.00 EV | 9.7mm | ISO-80 | Flash did not fire | 2006:02:05 15:32:31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전시된 조각상의 일부분

'몸을 뻗는다'는 의미의 스트레치(Stretch)는 남이 볼 때에는 닿지도 않을 곳에 무리하게 몸을 뻗어서 닿으려고 하는 것처럼, 현재 기업 상황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로 야망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을 뜻합니다.

신규사업을 담당하면서 매출과 수익이 발생되지 않는 목표를 세운다고 참기 어려운 질타를 받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낮은 목표를 삼는 것은 아예 목표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몰아세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미적 공감은 하지만 상황적 동의는 할 수 없습니다. 

어쨋거나 그러한 높은 목표를 달성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레버리지(Leverage)입니다.

레버리지는 지렛대라는 말인데, 몇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를 적당한 길이의 지렛대와 적당한 위치에 지렛점을 잡을 수만 있다면 혼자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의 원리에서 따온 개념입니다. 

자원이나 규모가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이라도 핵심적인 능력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하여 최대한 독특하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개발할 때, 마치 규모가 훨씬 크면서도 무식하게 밀어 부치기만 하는 기업에 비해 경쟁적인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발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스트레치이고,
그 스트레치가 허무한 노력으로 끝나지 않도록 창의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레버리지입니다.


이러한 목표의 설정과 달성의 지혜는, 기획이라는 단어를 업무분장으로 한 모든 일꾼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귀중한 마음 가짐이기도 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항상 장대하지만 결과를 점검하는 시점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계획은 세워야 합니다.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고,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을 내일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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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라면, 혼자라도 기꺼이 그 언덕을 올라가야만 합니다.

2016.12.28 00:30

예수님은 대의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내쫓을 때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가?"(마태복음 21: 12)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욕심을 경멸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예수님이 단순히 자제력을 잃으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감정이 복받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격분이라 부르든 의분이라 부르든, 거기에는 명백하게 강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시니어들은 고함을 치고 큰소리를 지르는 법을 알아야 하고, 종종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한 저술가이자 강사겸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Tom Peters)는 고객에게 경영자문을 할 때, 어리석거나 낡아빠진 정책에 강력히 항의하기 위하여 때로는 고함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고, 발을 세게 구르기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가 이미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열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탁월성(excellence)'에 전력투구한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톰 피터스(Tom Peters)는 고객에게 경영자문을 할 때, 어리석거나 낡아빠진 정책에 강력히 항의하기 위하여 때로는 고함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고, 발을 세게 구르기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진입니다.


대의에 열정적으로 직접 헌신하지 않는 시니어는 타인으로부터 커다란 헌신을 끌어 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 줍니다. 왜냐하면 열정적으로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헌신이 없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이 많이 예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13: 15~16) 예수님은 자신의 대의에 헌신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헌신의 대가를 요구할 때 기꺼이 혼자서 길을 걸어 가고자 했으며, 실제로 혼자서 걸어 가셨습니다. 


바알 신과 그의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에게 도전했던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바로 열정에 관한 얘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그의 제물을 소멸시킬 수 있도록 하늘에서 불길을 내려보내 주시길 기원하면서, 이 불길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그때 당신들의 신이 참 신이고,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는 제물을 여러 개로 토막 내어서 제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불의 원천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이 일지 않도록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그 다음 그의 사형집행관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하늘을 향하여 외칩니다. "하나님이여, 저에게 응답하소서." 그러자 곧바로 불길이 내려와 제물과 함께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 태웠고 도랑에 괴어있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려 버렸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헌신을 통해 구현한 시니어십이었다. (열왕기상 18: 37~39) 엘리야는 불을 가졌습니다. 


엘리야는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며, 그의 제자인 엘리사 선지자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재빨리 엘리야가 지닌 영감(spirit)의 갑절을 요구했습니다 (열왕기하 2: 9~14). 그는 그것을 얻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지 수년이 지난 후에 어떤 사람들이 시체를 묻으려다가 강도 떼들을 만나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 속에 던지고 달아났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나서 일어섰던 적도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헌신적 에너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전설로 여긴다해도, 그 요점은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신적인 에너지가 내재된 영향력은 한 개인의 육신적인 생애를 뛰어넘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3: 3 7~38). 실제로 수많은 시니어들이 경험하듯, 사람들은 잔치에서는 시니어들의 옆자리에 앉기를 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도와 지하실을 청소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종려주일(Palm Sunday)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종려나무 가지를 놓고서 찬양하는 행복감에 젖었지만, 막상 예수님이 '해골(Golgotha, 골고다)' 이란 의미의 이름을 가진 흉칙하고 적막한 언덕을 올라가기로 결심하셨을 때에는 어느 누구도 함께 올라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시니어라면, 혼자라도 기꺼이 그 언덕을 올라가야만 합니다. 



시니어 여러분,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시니어가 아직도 존재합니까? 시대적 착오입니다. 

혹시 말로만 "나를 따르라!"하시고 뒷전에서 평가만 하고 계신다면 탄핵대상이십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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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나귀를 걷어차지 않으셨답니다.

2016.12.27 00:30

구약성경에는 발람(Balaam)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발람이 나귀를 타고 길을 가던 중 그의 나귀가 갑자기 멈추었을 때, 그는 나귀를 저주하려는 잘못된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발람이 아무리 채찍질을 하여도, 나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귀 없이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귀를 심하게 두들겨 패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이 나귀를 치는 장면을 그린 성화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그를 막습니다.



이는 공포와 협박으로 지배하는 경영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마침내 나귀는 "왜 나를 때리십니까? 나는 당신의 나귀가 아닙니까? 오늘날까지 당신은 나를 줄곧 타고 다니셨는데 내가 언제 주인께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민수기 22: 30)


이때 천사가 발람에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네 나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렸느냐? 너는 지금 내 눈에 거슬리는 길을 가고 있다.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이나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귀만 살려 주고 너는 이미 죽였을 것이다." (민수기 22: 32~33) 그리고 천사는 떠났습니다. 나는 발람이 돌아가는 길에 내내 발람이 나귀에게 입맞추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보여 주기 위하여 반대하시는 때와 용기를 시험하시는 때 사이에는 명백한 선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폭력을 사용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반대편에서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하고자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디선가 천사가 길을 가로막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당신은 나귀를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꽃 향내를 맡고 당신의 행로와 사명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베드로는 방어본능으로 대규모 폭력에 대비할 준비를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말로라는 이름의 대제사장에 속한 종의 귀를 잘랐습니다. (요한복음 18: 10) 이때 예수님은 체포를 모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 군대가 계획의 일부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 로마 '나귀'를 발로 걷어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자동차의 타이어에 펑크가 나 비행기를 놓친 일, 약속을 어겨서 프로젝트의 일정을 연기하게 된 일, 우리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공무원 등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우리가 알아 차리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나귀'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진리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오히려 당신은 진리에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지상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그곳이 가장 위험한 장소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타고 있는 나귀가 갑자기 움직이기를 거부할 때 나귀를 걷어차지 말아야 합니다. 내려서 길에 천사가 서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귀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줄지도 모릅니다. 나귀는 결코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하는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나귀를 걷어차지 않으셨답니다.




발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뒷 얘기를 추척해 봅니다. 


민수기 24장 이전까지의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요,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올바른 길을 버리고 샛길로 새고 말았는데 “불의의 삯을 사랑한” 까닭이었습니다. 시작은 좋았다가 끝을 망친 경우입니다. 시작을 올바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옆길로 새지 않고 그 길을 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발람은 시작은 잘 했다가 마지막을 올바르게 장식하지 못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을 정복했을 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을 기록한 여호수아 13:22에는 그를 더이상 “선지자”라 부르지 않고 “점쟁이”로 부르고 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대변인이자 선지자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하나님의 원수, 점쟁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만 하나남의 자녀로 생각하는 발람이 이 세상에는 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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