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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2014.11.07 08:39



저의 세 번째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입니다. 2010년에 쓴 첫번째 책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는 5쇄까지 출간되는 행운을 주었고, 2012년 3월에 아내와 함께 쓴 《어느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사회과학부문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지요. 


이번에 쓴 책은 제가 다니고 있는 시니어파트너즈가 출판사입니다. 저희 회사는 원고만을 전해주면 이렇게 뚝딱 자가 출간을 해드리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요. 세번째 책 《매일 매일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제가 2011년 F1 비자로 미국 초단기 유학을 다녀온 유학기입니다. 부끄러운 실패담이지만 실수투성이기에 책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eBook으로도 볼 수 있고, POD(Publishing On Demand)로 주문자출간방식으로 출간됩니다. 미래 책을 인쇄해놓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원할 때 구매 신청을 하면 그제서 인쇄하고 송부하는 새로운 출간방식이지요. 


출판사나 작가가 경제적인 제고부담이 없는 획기적인 출간 방식이지요. 

출간비용은 원고만 준비되셨다면 50만원이면 출간해 드립니다. 참 저렴하죠? 


아무튼 제 세번째 책은 12월에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Book 가격을 얼마에 책정하면 좋을까요? 2천원, 3천원? 의견 받습니다. 


제 네번째 책도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구요. 출간 윤곽이 잡히면 또 공유해드리겠습니다. 가제는 《서른살을 위한 은퇴경제학》입니다.

 

A email from my family in the U.S.

2012.01.05 18:20
Dear Henry,

This is your family in the U.S.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you arrived at our home on Sunday, January 9, 2011, and changed us positively for the rest of our lives.  We miss you every day and think of you often.  We have enjoyed your gifts and pictures that you sent.  Your books and the pictures of our foundation are always on the coffee table for people to see.  Because of you, we are now legends at IPD and UNO.  Thank you for everything.  We are so sorry for not communicating with you but we love you the same.  How are your family and businesses?  We wish you Happy New Year and every success in 2012!  We love to hear about you and hope you will forgive our silence and E-mail us.  We now have Skype and would love to talk on that.  We are members of the Home Instead Center for Successful Ageing at the University of Nebraska Medical Center and workout 3 times a week. We feel great!

God bless you, your family and your businesses.

Love, Dave and Co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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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Rumbaugh (Founder of David Rumbaugh Foundation) and Connie Rumbaugh (World best cook and Owner of Connie's Restaurant)]


저에게도 미국에 가족이 있습니다. 가끔 기억나고, 가끔 잊는 것이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제 고향이 또 한 곳 미국에 있습니다. 바로 오마하입니다. 추워지면 고향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저의 마음이 자라고 지식이 크고 경험이 넓어진 고향입니다.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50] 국제 전문가 개발과정을 마치고, 가족과 만나다.

2011.09.23 00:24
'쉰 살 아저씨의 도전' 중 마지막 날 미션! 무사히 귀국하라.

나기 전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치운 내 방의 마지막 사진이다. 내가 이렇게 깨끗하게 치워진 방에 짐을 풀었었다. 책상 위에는 여권과 비행기 표, 그리고 생수병 하나를 제외하면 그나마 더 깨끗해지리라. 필통과 거울은 그야말로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인데 대체 누가 남겼었는지 알 길은 없다.

이제 뒤돌아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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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깨끗이 비워졌다. 이제 또 다른 학생이 머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데이빗' 어저씨로부터 마지막 칭찬을 받았다. 학생 떠나면 청소하는데 2~3일은 걸렸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떠나니 일거리가 줄었다는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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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찍은 홈스테이 주방]

문을 나서면서 전등 스위치를 내리려 하시는 '코니' 아줌마와 함께 주방을 찍었다. 밖에서는 '데이빗' 아저씨가 재촉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가 보다.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게 한다. 죄송합니다. '데이빗'

'아니 시카고로 비행기가 못 뜬다고?' 오마하 애플리 공항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내 비행기표는 오마하에서 시카고를 거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것이었고, 그렇게 예정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긴 줄이 만들어져 있다. 7시에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이게 왠일인가? 시카고 공항이 폐쇄되었단다. 일기 문제 때문인지, 공항 안전상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일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항직원이 권하는 얘기는 내일 이시간에 떠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오늘과 똑같은 일정으로 시카고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도 이곳에서 예약해 주겠다는 것이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데이빗' 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헨리, 하루 더 우리 집에서 묶고 떠나는 것이 어때?"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가로로 저으며 "감사합니다만,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야 합니다. 꼭!" 대답을 마치자 마자, 공항직원에게 매달리다시피 다른 길이라도 일요일 밤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표를 구해달라고 했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가족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데이빗'의 친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시골 공항에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항공사 직원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소리쳐 설명하기에 바쁜 지경이 되었다. 마침 토요일이고, 단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하니 북새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조금은 밉상이겠지만, 자리를 옮기지 않고 끈질기게 부탁을 했다. 가족과 빨리 만나고 싶으니 "표를 연결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새롭게 구상한 비행기 여정을 보여주었다. 시카고를 지나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 여정은 총 19시간인데, 시카고를 통하지 않고 가는 여정은 총 24시간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다섯시간과 24시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그래서 오마하 --> 시카고 --> 인천의 항로를 오마하 --> 댈러스 --> 나리타 --> 인천행으로의 변경 노선을 감사하게 받았다.

짐가방 하나는 모두 책을 담았더니 무게가 40kg에 육박했으나, 내용물이 책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항공사 직원은 추가비용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순수하게 받아주니 고마울 따름.

Way_back_Home_01105['시카고' 공항의 폐쇄로 비행경로를 바꾸어야만 했으니]

오마하에서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댈러스 공항에 10시 5분에 도착하고 2시간 뒤인 낮 12시 5분에 댈러스를 떠나서 3월 6일 일요일 날짜선을 지나서 일요일 오후 4시 30분에 도착한다. 다시 2시간 10분을 기다려서 저녁 6시 40분에 인천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오후 9시30분에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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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표 두 장]

짐표 두 장을 달랑 받고 내 손은 가벼워졌다. 수명 다한 가방을 버리고, $40짜리 배낭을 샀는데, 등에 메니 익숙하질 않다. 하지만 이제 떠날 준비는 다 끝났다.

Way_back_Home_01114[댈라스로 가는 비행기 보딩 패스] 

Way_back_Home_01102[홈스테이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와 마지막 사진]

울고 또 우는 '코니' 아줌마를 겨우 달래고 찍은 마지막 사진. 4월에 우리 미국 본사에서 컨벤션이 있고, 그때 또 올 것이니 그리워 말고, 그때 방이나 비워달라는 농담을 하면서 겨우 달랬다. '오마하 스테이크' 오마하에 도착하면 처음 만나는 가장 상징적인 문구이자, 대표 상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넥타이는 '내브레스카 대학의 공식 '메브릭스' 넥타이이고, 왼쪽 가슴 위에 단 흰색 뱃지는 '오마하'시 홍보 배지로 '레이' 교수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오마하를 선전해 주세요~.

아무튼 나를 위해 항상 가족처럼 돌보아 주신 두 분께 깊은 긴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마쳤다. 이젠 정말 우리 가족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가슴 한가운데 뜨거운 덩어리가 목으로 타고 올라왔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느냐고 말로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몸을 틀어 승강장으로 향했다. 열 걸음쯤 갔을까? 다시 뒤를 돌아다 보니, 여전히 두 분은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는 돌아가시라는 신호를 보내듯 손을 밀쳐내듯 흔들고는 검색대열로 빨려 들어갔다.

만남은 어색하지만, 헤어짐은 이토록 쓰리다는 것을 새삼.

Way_back_Home_01103[검색대 바로 직전의 광고판]

은퇴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계획을 세우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직업은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 대열에 서자 나는 다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집에 잘 도착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미션.
아니나 다를까. 오마하 공항에서는 전신 엑스레이로 철저한 보안검색을 진행했다. 살벌한 분위기에 소지품을 하나 하나 불쾌하듯이 확인을 받고는 댈라스로 향하는 승강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IPD_2011-03-05 07.33.12[역시 공항도 미국의 여느 복도와 다를 바 없었다.]

카펫이 깔려있는 환경 때문인지 어딜가나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인데 여전히 마룻바닥에서 사는 한국인 김형래에겐 낯설다. 단지 많이 보였을 뿐인데, 막상 귀국길에 들어서니 어색하게 보이기까지 한 이유는 뭘까? 난 도착하는 즉시 한국어를 잘 쓸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Way_back_Home_01135 [댈러스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핸드폰 문자]

문자는 발송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내가 어떤 경로도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도 했다. 난 스마트 폰에 어머니와 아내의 이름을 대명사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또한 남들이 지적하는 일이지만 개의치 않고 내식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정말 어색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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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공항의 스카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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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서스 공항의 안내표와 공항내 교통수단인 스카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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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공항의 구두닦이 아가씨. 의자가 제법 근사하다. ]

혼자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을 줄 때 마다 사진을 찍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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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에서 댈러스까지의 비행기 기내식, ★★☆☆☆]

Way_back_Home_01138[댈러스에서 나라타까지의 비행기에서 기내식.  ★★★☆☆ ]

Way_back_Home_01142[일본 나리타에서 인천 공항까지 비행기에서 기내식 ★★☆☆☆]

대체로 좁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자다가 밥 먹고, 잠깐 잡지보다 잠들고 24시간을 거의 갇힌 것처럼 있다 보니, 곤죽이 되어서 맛의 감각을 잊을 지경이다.

Way_back_Home_01152 [스마트 폰에서도 뭐가 제일 무서우냐? 했더니, 죽는 것보다 내 돈 없어지는 것이 더 무섭다. 돈이 뭔지?]

귀국길에서도 제일 눈에 뜨이는 것도 은퇴 관련 뉴스와 눈에 띄이는 것은 같은 내용. 그런데 은퇴에 대한 이슈가 미국에서도 자주 나오는 주요사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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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티타에서 인천까지 비행기에서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라고 안내문을 따로 준다.]

나리타에서 인천으로 오는 JAL에서 뭔가 변신하려는 노력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실의 오명을 벗고 일본의 대표항공사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보잉 767기로 개인용 기기뿐만 아니라 좌석도 여유롭고 시트도 세련되어서 오랜 비행 끝이긴 했지만 괜찮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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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리타 공항을 출발해서 인천으로 인천으로 ]

집 가까이 오니 지루하다는 생각이 싹 가셨다. 가족들이 어떤 모습을 나를 맞이할까? 인천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리무진 버스를 타면 얼마나 걸릴까?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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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무사히 도착, 마지막 미션 수행 완료]

공항에 내려 세관 수속을 마치고 공항 문을 나서면서, 내 눈앞에는 덴버에서 보았던 로키산맥의 설경처럼 펼쳐진 내 가족만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건물 잔해들도 모두 보이지 않고, 주변 소음도 사라지고 오로지 나를 부르는 가족의 소리만 귀를 통해 들어왔다. 아내도 아들도 딸도 어머니도 공항까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나오셨다. 온 가족이 나를 맞으러 온 것이다. 나는 공항로비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만을 위한 큰 절이 아니었다. 나이와 상황에 걸맞지 않게 갑자기 손 놓고 지내던 공부란 것을 하기 위해 떠나 있는 동안, 전념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 가족 모두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IPD과정 수료 후 인천공항 귀국길
[인천공항까지 마중 나온 가족과의 사진. 아내는 수줍어했다. 이날 사진사는 어머니]

가족 모두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눈부시도록 환했다. 밖은 검은색 자욱한 밤이었지만, 밝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태양 빛으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배운 것을 유용하게 하나 하나 실천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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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아저씨의 도전] 후기

제가 57일간 전혀 입도 떼지 못하던 영어 실력으로 떠밀리듯 미국의 대학에서 한 과정을 그것도 아주 좋은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돌아보면 지금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단 하나 '그 분'께서 인도해 주셨다는 것만 확실합니다. 

제일 먼저 사장님의 용단이 없으셨다면 저는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동료의 배려가 없었다면 맘 놓고 몰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늘 응원해주시는 '상급생'가 계셨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격려의 글을 써주신 어머니, 무한 신뢰로 조용히 나를 응원한 아내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복잡한 입학과정을 묵묵히 엄마와 상의해서 경제학과 대학생이 된 아들, 그리고 가끔 문자메시지로 격려해 준 딸. 사랑합니다. 

오마하에서도 홈인스테드시니어케어 본사 직원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오마하 한인 장로교회 이 목사님을 비롯한 교인 여러분이 믿음의 성(城)을 높여주셨습니다. '에드퀸' 주임교수와 '레이' 교수, '메리팻' 교수 그리고 '애싱거' 교수가 나의 지식에 파이프가 되어주셨고, 학사 운영에 '케이트' 그리고 대학교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홈스테이 가족,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바들' 그리고 '코니' 할머니의 손녀 '케이' '코니' 할머니의 따님 가족들, '데이빗' 아저씨와 그의 친인척들. '카스' 거리 동네 분들, 그리고 기업 방문 시 친절했던 여러분 모두 내게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간의 사진을 정리하고 사진첩을 만들어서 '코니' 아줌마에게 발송했습니다. 저에겐 제2의 고향이 오마하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드리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교과 내용은 혹시 '저작권'에 해당할까 유학기에서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무에 유용한 학습이었기에 필요한 것들은 꼭 활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저는 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내브레스카 대학의 동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같이 공부했던 '차우', '이바타', '다치로', '오스틴' 그리고 '셉'과도 계속 연락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페이스북에서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가 나의 뻔한 영어실력으로 '놀다 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나의 대답과 이와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지금까지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모든 수업을 녹음해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복습을 꼭 했습니다. 그것이 비결이었습니다. 물론 녹음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줄 모르겠으나, 복습하기 위해서 모든 과정과 과목별로 시간마다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수업 내용을 이해가 갈 때까지 들었습니다. 그것이 비밀이었고 비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쉰 살 아저씨도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제가 한 것처럼 누구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저는 건강했고 콧물감기 하나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떠날 때부터 이렇게 사진과 글을 통해서 그간의 생활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의 두 아이에게 보여줄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유어스테이지닷컴(www.yourstage.com)'에 고정 난을 주셔서 오히려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탈자와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서는 연재가 끝나더라고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회차에 따라 기복도 심하고 내용도 많이 다른 점은 저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니 이해 부탁합니다. 그간 재미없는 개인적인 일상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작하면서 누군가 읽어줄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고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읽어주실 것으로 믿었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마침 연재를 마친 다음 날인 내일이 스물두번째 결혼기념일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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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49] 졸업논문 발표, 졸업식 그리고 고별사

2011.09.20 00:02
내 비행기표가 3월 5일 오전 7시 오마하에서 시카고로 향하도록 예약이 되어 있다.
 
오늘은 3월 3일이다. 오마하를 떠나기 이틀 전인 셈이다. 그 시간의 흐름도 공평하게 흐른다는 공학적 정확성을 빼면, 며칠 사이에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오전에는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팀별로 만든 회사를 소개하는 시간과 오후에는 오마하 시민과 교수님 그리고 다음 기수의 예비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 논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도록 예정되어 있다.

먼저 차우, 오스틴 그리고 이바타 세 명이 한 팀이 되어서 만든 회사의 발표가 있었다. 그 회사는 식당 프랜차이즈로 '동양식 국수가게(Oriental Noodle)'라는 회사였다. 발표는 '차우'가 맡았다. 6월 19일 아버지의 날 개점을 목표로 개업 준비를 하고 있으며, 개업기념으로 50% 할인으로 고객을 모신다는 내용으로 설명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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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을 만든 오리엔탈 누들의 윕페이지,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서 종이로 자르고 풀로 붙이고 손으로 쓰면서 분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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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팀의 발표 후 질의 응답시간, 처음으로 모두 말쑥하게 양복을 입고 자세를 잡았다.]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사회적 책임과 사회 공헌활동 등을 강조하는 수업으로 인해서 정기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위해서 무료 식사권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서 초과 이익부분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것을 회사 소개 페이지에 적어 넣었다.

이렇게 교육과정 중에 이익을 추구하지만 반드시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곳 국제전문가개발과정이 가진 특징이자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익을 극대화해서 배를 불리는 것만이 오래살기 위한 최고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할 때, 결코 잊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Final_Presentation_01039[우리팀 차례다. 메인 화면 우리는 30분내에 언제 어디에 누구라도 배달해 드립니다. "빠른배달서비스"]

우리는 행복을 배달하는 회사입니다. 단돈 $5이면 언제 어디에 누구라도 배달해 드립니다. 기상 악화때문에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바깥 나들이부터 물건 배달, 음식재료 사다 드리기 등 빠르게 배달해드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다. 손으로 만든 웹사이트 메인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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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비스 상품을  소개하는 페이지]

우리는 오마하 시내을 중심으로 20마일 내에 있는 모든 배달을 취급한다는 것으로 문에서 문까지, 음식도 배달하고 사람도 반려 동물도 예외없이 취급한다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제한 무게가 있다. 100kg. 다행스럽게 이 수업은 '애싱거 교수'의 수업이라서 괜찮았는데 질문 시간에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메리 팻' 교수의 몸무게는 100kg이 넘는다는 중론이었다. '메리 팻' 교수가 '무게 제한 100kg' 문구를 보았으면 우리는 상상못한 처벌을 받았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잠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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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페이지. 개업기념으로 10% 할인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충성고객 프로그램으로 10번에 1번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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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개 페이지, 퀵서비스에 관해서 페이지]

어쩌면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되고 중요하게 검수를 받은 페이지이다. 우리 기업의 사명은 '어르신을 돕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 비즈니스는 30분만에 언제나 어디나 무엇이든지 배달하는 것이고, 어르신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기업 가치로 상정했다. 사회적 의무로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을 돕는 것을 목표로, 어린이들에게는 안전 운전 학교를 개설하고, 매주 토요일이면 도로 보수하는 봉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것을 공표했다. 이 정도면 정신을 차리고 만든 회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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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 및 상장 계획]

회사의 설립일부터 시작해서 자금 조달 방법과 사업 계획 그리고 예상 매출 및 상장으로 목표로 추진하는 등의 재무계획을 비롯한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계산의 착오나 문제는 없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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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이다. 대표이사 사장에 내가 선임되었다. ]

대표이사와 고객서비스를 담당으로 내가 선임되었고, 케이 다치로는 마케팅과 판매 담당의 CMO를 그리고 CFO를 '셉 (바샤르도스트 세브랍둘라)'이 맏았다. 그리고 우리 셋 모두는 퀵 서비스 회사의 퀵 운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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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하는 방법]

주소는 내가 묵고 있는 홈스테이 주소를 썼다. 그리고 이메일과 전화번호 거기에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소셜네트워크에서도 접속 가능하도록 고객 접점을 넓혀 놓았다.

Final_Presentation_01049[발표는 내가 맡았다. 사진 왼쪽에는 질문을 대비해서 많은 자료들이 올려져 있다.]

'셉'과 '다치로'는 나에게 발표 기회를 양보했다. 어쩌면 그 기회를 내가 노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에도 뒤로 물러서거나 주춤거리지 않았고, 이번 발표에도 역시 그런 용기를 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뒤로 빼고 위축당하고 양보하면서 기회를 버린다는 애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특히나 나이 차별이 없던 이곳에서는 그러한 이유보다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공정한 룰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Final_Presentation_01053[같이 회사를 설립한 '퀵서비스' 회사 창립맴버]

CFO인 '셉'과 CEO인 '나" 그리고 CMO인 '다치로' 우리는 셋이서 유치원생처럼 잡지에서 그림과 글씨를 가위로 오리고 색연필과 칼라 사인펜으로 웹페이지를 같이 만들며 협동심을 배웠다. 인터넷으로 만들거나 PC에 만들지 못하도록 그 한 이유는 '혼자서 작업하는 것으로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애싱거 교수'께서 가르침을 주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만일 PC작업으로 진행한다면 '셉'은 분명히 빠질테고, 나와 '다치로'가 만들지 않았을까?

오전 발표시간은 질문시간을 포함해서 각각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은 금새 오후로 넘어갔고, 오후에는 졸업 논문 발표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8주간의 교육과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메리 팻' 교수가 스마트 보드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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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발표에 앞서서 '메리 팻' 교수가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제가 발표요령에 대해서 알려드린 것 잊지 않으셨죠? S O F T E N, 부드럽고, 자세를 열고, 앞으로 향해서, 분명한 어조로, 눈을 맞추어가면서, 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잘 부탁합니다." 유치원생들의 발표를 앞두고 애타듯이 설명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다름없으셨다.
 
첫번째 졸업논문 발표는 예정대로 내가 시작이었다.


[동영상 45초: 졸업 논문발표의 첫 장면을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으로 사귄 나의 사진 친구 마티 핑커(http://www.flickr.com/photos/martypinker/)를 모델로 썼다. 그의 사진 사이트 프로필에 어릴적 사진들을 보면서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의 소재로 적당하다고 판단을 했다. 그의 사진은 어릴적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비교적 여러장을 통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올려져 있다.

사전이해가 필요한 것이라서... 어떠신가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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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맡은 나의 발표 장면]

나의 첫 발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동영상을 통해서 발표할 주제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도록 하고, 이어서 본문에 대해서 설명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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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발표 중에 참고했던 '책'을 보이고 있다.]

다행스럽게 동기 다섯 명과 지도교수 세 분 그리고 시민 평가단이 큰 박수로 마무리를 정리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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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로'는 혼다 계열사에 근무하는 관계로 전기 자동차를 주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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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는 호치민 시의 도시개발에 대해서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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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선통신시장에 대해서 발표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바타'의 '일본과 미국식 경영기법에 대한 비교'와 '오스틴'의 'First National Bank의 세계화 방안' 발표 사진이 없다. 찍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파일을 삭제한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두 친구의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있는 일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긴장했었고, 그만큼 발표에 집중했다는 얘기이다.

오늘 논문발표에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는 초대에 응하지 않으셨다. 그저 앉아서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 같다.

졸업논문 발표가 끝나고 나서 허탈한 표정으로 학생회관에 동기 여섯이 모였다. 그간의 회포도 풀고 도서관에서 준비할 필요도 없으니 이젠 쉬자고 했다. 그리고는 '올드밀'지역에 있는 싸구려 뷔페식당에 가서 숨이 차도록 배를 채웠다. 그리고 다음날 있을 졸업식을 대비하여 조용히 각자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3월 4일 졸업식. 학생회관이 있는 챈슬로 룸에서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식이 있는 날 아침에도 수업이 있다. 어제 졸업논문 발표에 참석하지 않았던 '레이' 교수가 야외수업을 제안해서 모두들 차를 타고 시내 빵집에서 마지막 수업을 갖기로 했다. 이름이 파네라 빵집(Panera Bread)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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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파네라 빵'집 나중에 생각해봐도 '레이'교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빵집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면서 한 여성 시니어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보시던 신문 중에서 스포츠 면을 주셨다. 잠깐동안에 생긴 일이지만, 그 분께서는 다정하게 대해주는 내게 고마우셨나보다. 그분이 나에게 줄 것은 신문 뭉치 중에 하나였지만, 나는 소중하게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레이' 교수가 나를 주목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레이' 교수는 갑지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더구나 현지인들과의 교감을 제가 시니어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본인은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졸업식에서의 이별은 감당할 체력(?)이 안된다며 그자리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불과 네 분의 교수 중에서 세 분 만이 졸업사진에 나오는 일이 되고 말았다. (졸업 사진에 '레이' 교수는 없다.)
  

UNO_IPD_Graduation_Ceremony_01087[졸업식장에 들어서니 반듯하게 점심을 위한 식탁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초청받은 분만 입장 가능]

UNO_IPD_Graduation_Ceremony_01090[졸업식 식순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논문 발표의 제목도 들어가 있다.]

며칠전 수업시간에 갑자기 한 사람씩 벽 앞에 서라고 하더니 찍은 즉석 사진이다. 나에게 부탁하면 더 좋은 사진을 준비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얼굴은 긴 머리로 검게 그늘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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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식순이 12시 부터 시작해서 1시 30분에 끝나는 식순이 적혀있다. ]

UNO_IPD_Graduation_Ceremony_010851['코니' 아줌마, 내가 졸업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우셨다.]

초청인사 중 가장 먼저 졸업식장에 들어선 것도 '코니' 아줌마와 '데이빗' 아저씨였다. 그래서 난 행복하게 이곳 생활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었나 보다. 수수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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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퀸' 주임교수의 졸업식 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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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증을 받고 '메리 엘린 터너' 학장과 '에드퀸' 주임교수와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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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씩 고별사를 연설을 한다. '이바타'의 순서이다. 각 테이블마다 졸업생과 홈스테이 가족이 앉았다.]

내가 한 고별사는 워낙 초보 수준의 영어이고, 번역해서 이해하기 보다는 마지막 내가 느낀 미국 학교 과정을 수료한 미국식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번역하지 않고 원문을 그대로 올려본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2022년 2월 22일 오마하에서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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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Speech


Hyeong Rae Kim UNO IPD Trainee 2011 Session III

On this special day, I would like to share how fast my training period has passed by saying   

“one day to 8 weeks in 10 seconds.”

Reflecting on everything that has happened during the past 8 weeks,

I can only thank God for blessing my training period, which is far beyond what some would simply describe as lucky.

I look back on a few, but very important, gifts that I was given in my life, to be Positive. IPD program has made me Positive.

When Dean Gouttierre first started the International Professional Development program, I know the mission statement of IPD program was ‘to prepare professionals to conduct business in the global marketplace by developing communication skills and acquiring business knowledge’. Now, I understand.

My sincere appreciation goes to Mr. Quinn. Ed Quinn has always had a good reputation, and everybody likes him. I’m sure he liked and respected those people as well. “I believe in you.”

Ms. Reid, I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my heart. Cat makes me become a more Positive person. No matter what or who they are or what they do, everyone is important to someone. Therefore, we learned to respect each other with Positive Thinking. She taught me, “Be Positive.” Global Business Communication is my favorite subject, because GBC class made me to be brave, when moving forward to the World. “I respect you”

Ms. Ashinger, I can never thank you enough. Sue always teaches us with a big smile and a careful touch. For my executive summary, Sue complimented on my English writing. So, now I have another dream. That is to write a book in English. “I like you”

Ms. Roy, I am deeply grateful to you. I always look forward to MP’s class, because she enabled me to think deeply about many topics. My final presentation was devoted to her ‘Blue Ocean Strategy’ lecture. “I’m proud of you.”

And I am deeply grateful to my follow trainees.

We promised to meet on Feb. 22nd 2022, after 11 years. At UNO.

I Hope,

Mr. Bashrdost will be a CEO at Afghanistan Telecommunication Company,
Mr. Chau will be the Major of Ho chi minh City,
Mr. Ibata will be a CEO
Mr. Tashiro will be a CEO and President
and the young Mr. Kim to be a private banker. “I like all my trainees, too.”

Last but not least, my home-stay family, I’d like to express my heartfelt thanks to you. With my host family, we dream a dream. One is to set up ‘Connie’s restaurant’ and another one is to found ‘David Rumbaugh Foundation’. I hope our dreams come true. “I love you”

On my IPD graduation, I have no words to express my gratitude for all. We only part to meet again. I’ll be back, Omaha and UNO.

“Thank you.”

Hyeong Rae Kim.



[동영상 20분 39초: 내브레스카대학 국제전문가개발과정 졸업식과 나의 고별사]


UNO_IPD_Graduation_Ceremonry_2290['레이' 교수가 빠진 졸업식 단체 사진]

아쉽게도 사진이 올바르게 찍히지 않았다. 늘 중요한 사진은 잘 안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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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크게 나온 사진, 하늘로 솟구친 '나'를 위해 찍은 동기들의 배려가 담긴 사진. 사진은 성적순?]

UNO_IPD_Graduation_Ceremonry_2300[나와 홈스테이 가족, 머리가 많이 자랐다. '미장원'에 수 많은 괴담 때문에 두 달을 기르고 말았다.]

UNO_IPD_Graduation_Ceremony_01084['애싱거' 교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편지, 내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칭찬이시다. 으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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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서 받은 수료증, 결코 학위를 받은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85년 학사학위가 학위의 전부다.]

졸업식이 끝남은 과정의 종료이기도 하지만, 동기와의 이별이기도 했다. 깊은 포옹과 격려로 서로에게 부디 건강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가정에 평안이 있기를 기원했지만 그것이 전부일뿐. 졸업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하는 가운데 초청된 하객들은 모두 다 떠나고 휑하니 학교도 적막한 상태로 바뀌었다.

주차장에 혼자 도착해서는 방향을 책방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있는 지폐 모두를 셈하니 $150 정도가 남았다. 그간 혹시나 갑자기 쓰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아낀 돈이었는데, 망설이던 책을 사기로 했다. 주머니에 동전 몇 닙만 남도록 모두 책으로 사서 홈스테이로 돌아왔다.

3월 4일 오늘 이곳에서 꼭 해야 할 마지막 일은 '임대한 자동차'를 반납하는 일.

해가 어스름할 즈음에 내가 먼저 '임대 자동차' 사무실로 향했다. '데이빗' 아저씨에게 시간 맞추어 데려가달라는 사전 약속에 맞추어 '임대 자동차' 사무실 앞에서 만나고, 우체통에 자동차 열쇠를 넣어두는 것으로 자동차 반납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자동차에 추가적으로 흠집이 생겼는지, 휘발유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전혀 검사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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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올려놓은 다음 연수자를 위한 선물, 8월15일까지의 주차권과 GPS]

가방도 다 싸 놓았고 세면도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1층에 내려다 놓았다. 마지막으로 책상위에 다음 차수로 오실 분에게 선물을 남겨두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몇 시간 만에 티끌하나 없이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런 모습의 나를 보고 '코니' 아줌마는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실까? 그러나 지금부터는 시간도 서울 시간을 맞추어 놓고, 가족과의 상봉을 그리는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내야 했다.
 
이별은 짧게! 만남은 반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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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쉰 살에 미국유학 다녀오기-48] 오마하에서의 추억 정리, 그리고 지킬 자신이 없는 또 다른 약속

2011.09.16 00:46
떠날 시간을 정해 놓고 시작했던 이곳 오마하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 방부터 정리해야겠다. 평소에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아마도 아침 출근하기 직전의 모습인 것 같은데, 침대 옆 스텐드위에는 TV 리모콘, 알람시계,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 그리고 핸드폰이 놓여있다. 스테플러, 비타민제, 사탕, 껌이 막춤을 추듯 자연스럽다. 의자에는 수건이 반항하듯 걸려있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태웠던 할로겐 전등이 폭설처럼 빛을 내리 쬐고 있고, 옆에 컴퓨터 딱 한 대 분량의 크기로 자리잡았다. 노트북 앞에는 카드집이 있고, 책상 오른 쪽에는 보다 만 책과 신문이 엉켜있다. 아마도 책위의 검은 색은 장갑같다.

바로 첫번째 큰 책꽂이에는 책들이 옆으로 놓여있고,  필통에는 호화롭게 여러개의 펜을이 세워져 있다. 할로겐 전등 위의 좁은 공간 왼쪽에는 오마하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영수증이 하루하루 꼽혀있는데 분량이 한뼘 가까이나 된다. 아내의 걱정거리를 이곳에서 또 만들었다. 그 옆에는 컴퓨터 연결코드가 자리잡았고, 비스듬히 이곳에서 받은 편지 세 통이 기울어 있다. 책꽂이 맨 위에는 내비케이션 케이스가 공책 위에 위태하고 그 옆으로는 과제와 두 개의 공책이 요염하다.
TV 옆에는 에드퀸 교수의 사진 액자가 세워져 있다. 갔다 드려야 할 것인데, 바닥에 있는 비닐 봉지에는 아마도 감자칩 먹던 것이 담겨있을 것 같다. TV 거치대 밑에는 신문이 종류별로 있고, 앞쪽 검은 색 덩어리는 바로 가방. 그리고 선물로 준비한 내가 쓴 책이 세워져있고, 카메라 렌즈 케이스가 책위에 있다.

꾸밈없는 생얼의 내가 살던 홈스테이 내 방의 모습이다. 이 방을 정리해야 한다.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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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마루에 카페트, 내가 움직일 때 마다 나무 바닥은 음계에 따라 소리내는 삐걱이 피아노 같았다.]

추위에 떨어 양가죽점퍼를 입고 잔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난 살아있는 것을 이 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난 이 좁고 추웠던 방을 기억해 낼 것이다. 고통의 장소가 아닌 추억의 장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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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써서 정리를 했을 때 모습이다. 여전히 책상 위는 좁고, 할로겐 전등은 위험하고, 밖은 춥다.]

고백하건데 나는 여기서 딱 한 가지는 정말로 잊고 지냈다.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이것을 가지고 비교하지고 않았으며, 남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나이'다. 나이를 이유로 채용에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곳의 법이요. 1986년 제정. 그리고 누구도 나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편했다. 단 한 번 시카고 오하라 공항에서 공항직원이 늙은 나이에 공부하러 가면 박사가 되겠냐? 고 비아냥 거렸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난 이곳에서 '쉰 살'이라는 나이를 잊었다. 잊고 살았다.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나이 차별없어 좋았다.

Last_Saturday_00989[이곳에서 새로 산 과제용 도서와 관심있는 분야의 책들, 나는 책사는 것만큼은 광적인 면이 있나보다. ]

"친구들에게 우리집 거실엔 옷장이 없단다."라고 자랑하듯 말해왔다. 안방에 옷장 있을 자리에 책장이 배꼭하게 자리잡은, 아내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유학 전, 아내와 어머니와 나 셋이서 어떻게든 거실로 책장을 옮기는 방법을 강구하려고 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산 책이 한 두 권이 아니다보니, 배송의 문제가 생길 상황이다.

분명 아내가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서울에서도 다 살 수 있는 책 아닌가요? 그 무거운 것을 뭐하러 미국에서 힘들게 사 오셨어요? 기념품도 아닌 것을?" 아마 나는 이렇게 답을 할 것 같다. "이 책들은 수업에 쓰였던 교재야, 그러니 미국에서 살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이 책을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않겠어?" 혼잣말로 아내의 걱정을 상상하는 것을 보니, 이제서야 아내와의 상봉을 상상하게 될 정도로 시간이 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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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왼쪽에 노트북 컴뷰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외장 하드 디스크. 사진 찍는 것 방해받지 않았던 곳]

오마하에 오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죄다 뒤져 보았지만, 이곳에 오락거리란 전혀 없는 듯 싶었다. 만일 기회가 있으면 우리 두 아이를 이곳에 유학시키고 싶을 정도로 '시골'이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즐기던 취미를 제한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찍기' 잔소리하는 아내도 없고, 걱정하는 '어머니'도 없으니 이곳에서 사진찍는 것은 정말 무한대였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만 6천200장이 넘는다. 카메라 중고가격이 뚝 떨어졌을 것 같다.

이제는 카메라 메모리와 노트북 컴퓨터에 있던 사진들도 고스란히 외장 하드 디스크로 옮겨야 한다. 맨 왼쪽에 명함이 쌓여있다. 명함도 다 컴퓨터에 정리해 넣어야 한다. 이곳에서 받은 명함이 딱 50장이다. 이 중에는 식당안내 명함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쨋거나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 7천 명을 만났는데, 오마하에 있는 기간에도 새로운 만남을 쉬지 않았다는 것에 조금은 성과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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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증만 있으면 언제든지 입을 열어주던 공짜 신문대, 많이 아쉬워 할 것 같다. 오늘 뉴욕타임즈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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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하기 조차 힘든 상황, 난 이곳에서도 부지런을 떤 덕분에 문제없었다.]

절대로 불법 주차를 하지 않은 이곳 학생 및 교직원, 자리가 없으면 통로에 차를 시동을 걸어논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냥 기다린다. 이곳 중부 지역 사람들은 법없이도 총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이 참으로 유순하고 친절했다. 펀드매니저 공부하러 갔던 뉴욕과는 정말로 다른 곳이었고, 시찰하러 갔던 샌프란시스코의 서부 지역과도 정말 달랐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답답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숨이 컥컥 막혀 올 것만같은 곳이다. 나는 이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반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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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층 조각상, 이 넓은 도서관에 날마다 자리가 비어있음은 늘 축복이었다. 제일 그리워할 것 같다.]

늘 조바심을 갖고 다녔던 도서관의 선입관을 깨 준곳이 바로 이곳 네브래스카 대학의 도서관이다. 단기 유학생인 나에게 그 어떤 차별도 없이 규정된 시간에 문을 열어 주었고, 언제든지 시설을 구별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 평생 한 번도 자리에 뜨지 않고 지낸 최장의 학습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7시간. 나는 어떠한 강요도 강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면서 7시간을 지낸 곳이 이곳 도서관이었다. 이제 이 도서관도 오랜 시간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생각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간 무한대로 열어준 도서관에 대해서 감사. 그리고 그 자리를 양보해준 네브래스카 대학의 학생들에게 감사. 도대체 이곳 학생들은 수업 끝나고 어디에 갔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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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출입문, 그러나 발로도 팔꿈치로도 열을 수 있었고, 수십명이 한꺼번에 드나들 수 있었다.]

뉴욕에 갔을 때, 엠파이어스테이츠 빌딩의 작은 출입구를 보고 놀랐었다. 그런데 이곳 학교의 넓직한 출입구가 너무 맘에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 종소리는 없었지만, 이곳 육중한 출입문은 나에게 관대함과 예정을 가르쳐 주었다. 꽉 들어차도록 넒은 문.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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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출입문의 엄격한 임무, 아무리 춥더라도 그 강추위가 이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

나는 바깥 출입문을 통해서 자신의 역할에 치열하게 엄격함을 배웠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수시로 오르내리는 바깥공기가 이 문을 절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했다. 아마도 이 문이 없으면 수 많은 강의실이 영하 40도의 혹한을 직접 만나게 될 것이다. 태산과 같이 나의 임무를 다하는 정신. 나는 이 문을 통해서도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이 문을 통과할 기회도 몇 번 없을 것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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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개인좌석 2층, 가끔은 내가 하는 짓거리를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는 2층 구석의 열람실]

나는 이 자리에 앉아서 리포트를 썼다. 내가 쓰는 영어 문장이 얼마나 부끄럽고 수준 낮은 것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포트를 쓰는 장소로서는 가장 좋았다. 가끔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이곳 도서관은 나의 눈치를 휴가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 두 시간 지나도록 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 되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잠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는 곳이니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이곳이 그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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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예약석, 나는 제한 없이 이런 예약석을 사용할 수 있었다.]

관광하러 온 것처럼 사진을 찍었지만, 그것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막연하나마, 유학기간 57일을 모두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할 수 있었다. 물론 재산이나 경제적 가치로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사무치도록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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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뒤편 잡초]

주차장에서 도서관을 향할 때나, 도서관에서 주차장을 갈 때, 이 추운 겨울의 삭막한 색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거친 바람과 맞서는 모습이 얼마나 장업하고 호쾌하게 보였는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봄이 오면 푸르름을  변신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이곳을 떠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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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주변]

시계탑을 중심을 북쪽은 주차장, 서쪽은 도서관, 남동쪽은 CPACS 우리 강의실이 있는 곳, 북북동쪽은 음대, 북동쪽에는 학생회관이 있다. 이 시계탑은 동문 부부가 기증한 곳이다. 몇 층 높지도 않은 이 학교의 명물로 아직도 '땡그랑"하는 종소리로 시보를 알리는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 시계탑이다. 종종 걸음으로 이 시계탑에 모여서 박물관도 가고, 아이스하키장도 가고 했던 곳이 출발이 이 시계탑이다. 이 시계탑도 이젠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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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uasive Speech가 진행된 Chancellor's Room]

내가 처음으로 설득력 있는 연설로 만점을 받은 곳이다. 완벽하다는 의미로 만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로 남들에게 설득한다는 것을 시도했다는 것은 출발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난 이 첸슬로 방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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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다치로'가 잠들었다. '에드퀸' 주임교수실 앞 대기실]

난 이곳에서 완벽하게 '학생'이 되었다. 직장인도 아니고 노땅도 아니고 보수꼴통도 아니었다. 그저 영어를 잘 못하면서 버둥대듯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순수 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주임교수가 호출이라도 하면 나는 이곳 소파에 앉아서 정학이라도 떨어질새라 걱정의 눈길로 초조하게 부름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나를 잠시지만 순수한 상태로 돌려 놓아주었던 곳이다. 난 이곳의 순수한 긴장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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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에 있는 학생 식당에서의 점심]

학생회관의 식당은 유일하게 비좁다고 느꼈던 곳이다. 정말 점심시간은 다른 대안도 없었고 비좁았다. 음식도 비쌌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도 서슴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흥미로웠고 신기했다. 그저 편안하게 다른 나라사람과 인종과 대화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시장같았던 식당에서의 점심을 난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오래 기억나도록 추억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친절했던 것은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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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오마하 팀]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리면 본능적으로 나는 대한국민임을 깨닫는다. 아마도 오마하팀이 함성을 지르면 나의 피는 검은 색으로 바뀌면서 'Go Mavericks'를 외칠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흠뻑 동문임을 알고 떠난다. '고 매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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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의 반스앤노블 책방]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어서 늘 흥분시켰던 곳이다. 심지어 점원이 나에게 포인트카드를 만들면 할인혜택이 있다며 오랜 시간 불편하게 나를 괴롭혔던 곳이다. 난 이곳에서 책을 사모으기 시작해서 급기야 큰 트렁크 하나 가득 책으로 채우고 말았다. 무게가 얼마나 더 나갈지 공항에서 또 하나의 과제를 남긴 곳. 아무튼 내가 가장 큰 유혹을 받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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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책]

은퇴관련 책들이 즐비하다. 다 사가는 것도 무리지만,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래서 눈에 넣어가기로 했다. 아내의 말대로 서울에서도 살 수 있다면 언젠가 사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에 담아왔다. 버리지만 않으면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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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본 보더스]

크로스로드 몰의 건너편에 있는 보더스 책방. 늦은 밤 이 곳에서 나는 '동전책 (Coin Book)'을 사들고 온적이 있다. '데이빗' 아저씨와 함께 미국 50개 주마다 발행하는 동전을 채워 넣기 위해서. 늦은 밤, '데이빗' 아저씨와 어둑어둑한 식탁에 앉아서 '동전책'을 완성하던 추억을 시작하게 한 곳이 바로 '보더스'이다. 나는 이곳 보더스를 기억하고 싶다. (보더스의 많은 지점들이 실적악화로 문을 닫는다는 시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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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스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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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스 앞으로 보이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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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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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이는 보더스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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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스 커피숍 입구]

그리고 이곳을 또 기억할 것이다. 나의 첫 돋보기 안경을 산 곳이다. 0.5로 표시된 가장 약한 돋보기이지만, 내가 나이 들어감을 신체적으로 직접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책을 보는 시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확인하고 $8 짜리 돋보기 안경을 산 곳이 바로 보더스이다. 나의 늙음을 확인한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럼 기약없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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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있는 저녁, 일본식당 사쿠라바나(SAKURABANA)에서 먹은 짬뽕(Champon)]

딱 한 번, 갑자기 국물이 먹고 싶어 일본식당을 찾았다. 아주 비싼 식당이었는데, 이곳에서 $25이나하는 짬뽕을 먹었다. 절대로 나는 미국음식이 질리지 않아, 그리고 김치 생각이 안나! 하는 나의 외침에 일침을 가한 곳이다. 정말 국물이 그리워 이곳을 찾아왔다. 그런데 모양은 근사했지만, 맛은 '꽝'이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N사 라면을 끓여먹고픈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사무쳤던 곳.

항상 그랬듯이 빚을 먼저 갚아야 하는데 빚진 곳은 아무리 따져 보아도 돈을 빚진 곳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을 빚진 것 같다.  홈스테이 럼버씨 부부,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에게 참으로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이 분들에게 무엇인가 해드리고 싶었다. '코니' 아줌마에게는 식당을 차려드리고 싶었고, '데이빗' 아저씨께는 재단을 만들어서 봉사도 하고 세계 여행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농담처럼 식사를 하면서 두 분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내가 지킬 자신이 없는 또 다른 약속을 한 셈이다. 지켜야만 양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가 부담을 안고 있는 이유는 두 분에게 받은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랄까?

정을 떼어야 한다. 그러자고 기억과 추억과 정을 떼려고 했지만.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정을 소복히 담고 있다. 그렇게 이틀 남긴 밤을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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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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