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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확인을 통해 강화됩니다.

2017.07.06 10:36

하바드(Harvard) 교정에 들어선 순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학업의 장소인데, 한갓 여행객이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실력이 없으니 관광으로나마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관광객은 당연 첫 번째로 인증샷을 날리는 것이고, 행운을 얻어오는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하바드대학 도서관에 붙어 있는 명문 30훈’을 사진기에 담는 것입니다. 아이들 학업이 돌이킬 수 없는 학령에 이르렀기에 손자손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자는 심사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제 여행 수첩에는 삐뚤빼뚤 급하게 적은 주옥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옮겨적은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자는 심사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마치 어려운 숙제를 밤새 해서 막 수업이 시작하면서 ‘숙제 책상에 올려 놓으세요!’하시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는 순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마 익숙한 문장일 것입니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등등 무려 30개나 됩니다.


인증샷 장소를 향해 모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저는 우선 순위를 바꾸어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저는 중앙도서관 하나가 무지하게 큰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급히 핸드폰을 들고 도서관을 찾는 구글링을 시도했습니다. 하버드(Harvard)에는 모두 73개의 도서관이 있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은 1638년에 설립되었다네요. 우리나라 역사의 같은 시간으로 비추어보면 조선의 인조왕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남한산성에서 항복하고, ‘세번 절 하며 때마다 머리를 땅에 찧도록 하는 굴욕적인 의식’을 했던 바로 다음해로 조선의 사대부와 지식인들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공황과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시기와 맞물립니다.


마침 누군가 젊은 엄마 여행객이 제가 가진 같은 궁금증을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도서관 명훈이 있는 곳이 어디죠?” 그러자 산만하던 여행객들 시선이 모두 가이드에게 꽂혔습니다. 일심동체로 행동을 단결시키기는 처음인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 가이드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것 못봤는데요?”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그간의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이 의심과 실망의 눈빛으로 급선회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실망했습니다. 그날 현지 교환학생이던 딸과 명문사학의 경제학도 아들 그리고 경력 30년의 베테랑 은행원 아내 그리고 교직 30년 경력의 팔순모친의 지력으로도 명훈 찾기에 실패하고 하바드를 떠났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우연히 월스트리트 저널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Enjoy the Unavoidable Suffering)’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바드 대학교의 사서이자 교수인 로버트 단트(Robert Darnton)이 지난 2012년 11월 15일 쓴 것입니다. 시간으로 보면 오래전에 실렸던  철지난 기사죠. 그 기사에는 발원지는 중국이고 중국 작가 대니펑(Danny Fung)은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장벽《哈佛图书馆墙上的训言 (Allocutions on the Harvard University Library)》’이라는 제목의 책을 2008년에 출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답니다. 이 책의 출판사는 북경이공대학출판사(北京理工大學出版社)라는 신인도를 업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하버드대학 도서관 벽에는 없는 명훈을 가지고 초등학교, 영어과정 시험, 베이징 대학의 입학 면접에 널리 사용되었고, 중국 웨이보를 비롯한 인터넷에 6,700만 건이 등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상무부(商務部, Ministry of Commerce)에도 읽어보아야 할 글로 추천이 되었답니다. 이 얘기를 다시 돌려보면 지난 2012년 기사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한 20훈이 한국에서 30훈으로 증폭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하버드 학생들에게 괜히 더 미안해 집니다. 사실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뭐 그리 중요하다고 물어봤는지요.


오늘 또 ‘하버드 30훈’을 SNS로 받았습니다.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새벽 4시에 날리셨더군요. SNS와 시니어를 결합하면 ‘퍼날르기’로 귀결되기 십상입니다. 이젠 그냥 퍼나르지 말고, 좀 더 깊이 파고 들었으면 합니다. 신뢰는 확인을 통해 강화됩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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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자본-001] 사회적 자본은 ‘지대추구행위’를 경계합니다.

2017.05.23 10:04
한국인이 성장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점차 냉담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본 이유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 때문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행복해진다고 믿었고 실제로 경제 성장과 함께 그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행복이 찾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었고,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성장의 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200km로 달리던 차에서 느끼던 짜릿함을 20km 속도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경제성장률 두 자리수를 10배로 높여 속도감을 비교해보고자 배수로 늘려 비교해 보았습니다.) 국민들은 성장의 과실을 나누며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포크와 나이프로 식생활이 바뀌는 이 와중에 숫가락이 쉼없이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성장에 대한 인식변화는 성장잠재력 소진에 따른 충분하지 못한 성장률, 고용이 따르지 않는 질낮은 성장, 양극화를 부추기는 불공정한 게임룰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저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는 것을 아직도 믿고 계신가요?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기존 기득권자들에겐 자기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경쟁적인 '지대추구 행위(地代追求,Rent Seeking)'로 나타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행위가 쓰라린 좌절감의 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분노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지대(地代)는 땅에 대한 임대료입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토지와 같이 공급이 제한적이거나 비탄력적이어서 기회비용 이상으로 얻는 몫'을 의미합니다. 이를 확장해서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을 설명하자면 의사, 변호사, 개인택시기사 등 면허가 있는 직종은 법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득권을 지키는 노력에 집중하고 사회 호혜적 노력보다는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것외에도 진입장벽을 높이려는데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귀족노조가 비근한 예로 설명될 수 있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학력 위조가 대표적인 '지대추구 행위'입니다. 학력 위조를 통해 제한된 지위에 오르고 교수임용이나 전문가로 칭송을 받는 기회비용 이상의 이익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고관대작이나 유명인을 제외하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엉터리 논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명함에 그 학력을 버젓이 기재하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누구도 그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경하지 않으면서 인정하는 것은 이 사회가 자처한 오명입니다. 이제 엄중한 위기감으로 국가적 생존본응을 일캐워 한국의 자본주의를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제가 대안으로 주목한 것이 '사회적 자본(社會的 資本, Social Capital)'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제3의 자본이라고도 합니다. 돈이나 기계, 땅과 같은 '물질 자본제1의 자본)', 기술이나 노하우, 인력 같은 '인적 자본 (제2의 자본)외에 사람들이 협력해 같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사회적 자본'입니다.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휘를 우리가 요즘 흔히 사용하는 소셜(Social)로 이해하시면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결코 공산주의를 선동하자고자 하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그야말로 선진국을 다녀온 여행객이 사상 최고로 늘어나면서 그들의 예절과 습성을 관찰하고 현지인처럼 행동하지만, 입국 심사대를 거치는 순간 교육받지 못한 천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천년된 로마의 도로를 걸어본 공무원은 현지에서는 감탄과 결심을 하면서 교육 효과를 연발하지만, 정작 연말이 되어면 또다시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사회적 자본은 신뢰나 상호주의, 책임감처럼 사회적 협력을 도모하는 비공식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합니다.


성장이란 장벽을 넘어 사람들이 보다 행복한 사회,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조건이 바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의 개념 규정은 학자마다 다르지만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학자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유하는 공통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바로 신뢰와 협력 그리고 소통이 사회적 자본의 핵심요소로써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사회의 윤활유입니다. 협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한국이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한 키워드입니다. 신뢰와 협력에 더해 갈증을 조정, 완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어기 위한 소통. 21세기 SNS 시대에 사회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소통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지대추구행위'를 경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사회적 자본'이라는 영역에 뛰어들어 공감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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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7.05.14 16:39


1981년 2월.

가급적 멀리 떠나야 한다는 지령같은 주문을 받은 때다. 원주고등학교 25회 졸업생인 나의 작은 주먹에 꼭 주어진 비밀 문서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내 친구 모두에게 같은 내용이 전달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짧지만 단호하고 숙명같은 그 명령은 '독립'이었을 것이다. 주먹을 꼬옥 쥐었다.

손바닥을 펴 보아도 보이지 않은 아주 긴한 나의 도피는 시작되었다.

각자도생으로 가급적 멀리 높이 깊이 떠나야 했고, 그래서 무언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다른 방위각과 고도와 색깔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6년간 일본식 교복을 입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목을 둘러싼 '후크 단추'를 풀어본 적도 없는 나에겐 그깟 지령은 쉬운 식은 죽먹기에 불과했다.

마치 태평양 전쟁이 끝났음에도 항복을 거부하고 산속에서 수 십년을 버틴 일본군 잔당같이 '내 길'을 찾아 헤매는 일은 변함없는 일상이었다.

어쩌면 조용하게 알아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변명같이 '동문체육대회'와 '나'의 악연은 길게 이어진 것같다. 꺼려야 할 특별한 불편함도 없었지만, 꼭 참석해야 할 목적성도 별로 찾기 못했다. 한길넘는 물에 빠져 발 디딜 곳 없던 나에겐 그저 허우적거리며 숨통을 공기와 연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세파라는 중력을 감당하지 못해 허둥거리며 친구라는 안전지대조차 가까이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일관했던 것이 분명했다. 허우적거릴 때는 그런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돌아보니 그랬다.

졸업이후 단 한 번도 모교에 들지 않았던 것을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각자도생에 충실했기 때문에, 지령에 충실했기 때문에,' 라면서 위장했는지도 모른다.

촉발이 된 일이 있었다. 양희문이라는 재학시절 섞인 기억조차 없는 동창회 총무 친구의 간절하고 반복적인 참여 종용이었다. 함기철 회장도 있었다. 이병관 재경회장도 있었다.

"저 친구들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길래?"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의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그 열정이 나의 깊은 양심의 폐부를 찔렀다.

꼭 36년 3개월 전 졸업 때 받은 지령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단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지령이 적힌 주먹을 살포시 펴 보았다.


당연히 '독립'이라고 쓰여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지령은 '동행'이라는 단어로 선명했다.


2017년 5월 13일.
아주 멀리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친구들 곁으로, '동행'을 완수하기 위해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너희 친구,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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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우자가 날 속이고 바람을 피울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7.04.29 22:27

모 정부부처의 담당자가 교체되어 5년사업으로 확정되고 2년간 지속된 사업이 종료되었다.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재 아래 이론이라 가설이 참이나 거짓일 확률을 찾는다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결혼한 사람인데, 당신이 출장을 마지고 집에 돌아와보니 처음보는 속옷이 당신 옷장 서랍속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직접 배우자에게 바람을 피웠는지 묻지 못하고, 아마도 당신 자신에게 물을 것입니까?

"나의 배우자가 날 속이고 바람을 피울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기서 '조건'은 당신이 문제의 그 속옷을 발견했다는 것이고,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참과 거짓을 평가하려는 '가설'은 당신의 배우자가 바람피운다는 것이며, 당신은 구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베이즈 정리는 이런 종류의 의문에 해답을 제시합니다. 다음 세 가지 변수의 값을 알거나, 이런 종류의 의문에 해답을 제시합니다. 물론 세 가지 변수의 값을 안다면 또는 기꺼이 그 값을 추정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 확률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 첫째. 문제의 그 속옷이 당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그 가설이 참인 조건' 아래에서 등장했을 확률을 추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의상 당신이 여자이고 당신의 배우자가 남자라고 칩시다. 문제의 속옷은 만일 당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 속옷이 어째서 그 자리에 있는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설령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남편이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그런 조건아래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문제의 속옷이 거기에 있을 확률을 50%로 설정합니다. 
  • 둘째. '그 가설이 거짓인 조건' 아래에서 문제의 속옷이 등장했을 확률도 추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면, 그 속옷이 거기에 있는 결백한 설명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도 신뢰하는 여자 친구의 속옷이며, 남편은 이 여자 친구와 순전히 정신적 교감을 나누면서 하룻밤 당신 집에서 잠을 잤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 속옷은 남편이 당신에게 주려고 산 선물인데 미처 포장하지 못하고 그냥 옷장 서랍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터무니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모든 확률을 통틀어서 5%라고 설정합니다.
  • 셋째, 가장 중요한 '사전 확률(prior probability- 특정 사건이 일어날 것에 관한 추가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알고 있는, 또는 임의적으로 설정하는 그 사전의 확률, 선험적 확률)'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 속옷을 발견하지 전에, 남편이 생각한 확률입니다. 당신이 이 확률을 얼마로 설정하겠는가? 물론 문제의 속옷이 등장한 지금 그 확률을 완전하게 객관적으로 설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확률을 경험에 비추어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결혼한 부부가 한 해 동안 바람을 피울 확률은 약 4%라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으니, 이 4%를 당신의 사전확률로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세 개의 값을 추정했다면, 베이즈 정리를 적용해서 '사후확률(prior possibility)'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려는 확률, 즉 낯선 속옷이 등장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을 확률입니다. 
  • 사전확률 (x=4%) 남편이 바람을 피울 확률의 초기 추정치 - 여러 연구 결과 참조
  • 새로운 사건 발생 (y=50%)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조건 아래에서 속옷이 등장했을 확률
  • 새로운 사건 발생 (z=5%)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애서 속옷이 등장했을 확률
  • 사후확률 [29%=xy/{xy+z(1-x)}]
    • 당신이 속옷을 발견했다는 조건 아래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수정된 추정치

당신의 집에서 낯선 속옷이 발견되었을 때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을 확률은 29%로 꽤 낮습니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확률(50%)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속옷이 나타났는데도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단 말입니까?

확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배우자가 바람을 피울 사전확률을 낮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결백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낯선 속옷의 등장을 설명하려고 내놓을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가 적긴 하겠지만, 어쨋거나 애초에 배우자가 배우자가 매우 결백하다고 생각하고 확률을 계산한 만큼, 이런 가중치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낮은 확률이 도출된 것입니다. 

이 칼럼에 첨부된 사진의 원류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공무원의 의사결정이 단순하게 윗선에서 결정된 것을 전달한 수준의 참여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목적이 중장년의 망하지 않는 창업을 목적으로 추진되었으나 창업이 저조하고 단지 음식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요리교실로 전락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 전체를 이끌어온 주체에 대한 신뢰가 낮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중단이라는 의사결정에 대한 매우 높은 확률을 계산한 만큼, 누군가에게 그 책임 또는 의사결정의 근원지를 단정하려고 하는 마음이 작동했을 것입니다. 

평번한 시민에게 비친 공무원의 모습은 '복지부동'이거든요. 더구나 그 윗선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없고, 명시적으로 최종 통보한 사무관급의 공무원이 서류에 적혀있으니 당연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심증적입니다. 그 심증을 좀 더 이론적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베이즈의 정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아무튼 시니어의 창업의 길은 험난합니다. 정부가 나서고 최고의 민간기업이 붙어서 수 백 명을 길러냈는데, 정작 수료자 중에서 목적에 부합한 창업자는 한 자리 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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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이치입니다.

2017.03.29 15:30

우리 사회에는 무엇인가 잘 되었다는 얘기의 뒷면이 존재하곤합니다.

시집을 잘 갔다는 얘기는 신랑이 밑졌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신랑을 잘 골랐다는 얘기는 그 중에서 잘된 것을 찾아내었다는 것이고, 반대로는 잘못된 것은 배제했다는 얘기입니다. 이익을 보았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특정하지 않은 이에게 돌아갈 작은 가능성이 나에게 돌아왔다는 요행수일수도 있고,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결과가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장가를 잘 갔다는 얘기는 신부가 밑졌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부족한 신랑이 더 많이 배우거나 더 심성이 좋거나 더 예쁘거나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 잘 되었다는 얘기는 그냥 노력한 그대로 생긴 그대로 기대했던 그대로 되었을 때 쓰는 말은 아닙니다. 

정말 잘 되었다는 얘기는 그 중에 일부가 공짜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뇌물은 태동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관이니 갑이니 하는 것들에게 잘 되게 해달라고 뇌물을 받칩니다. 밑을 고인다는 뜻이니 자연히 높아지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라는 의미도 밑에 고인 것이 많은 자리일수록 위지가 지면으로부터 멀어지는 뜻입니다. 

그런데 높은 사람들이 온전하게 세상을 누리는 것을 쉽게 보지 못합니다. 제대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두 다리 뻗고 잠에 들 수 있는 것이고, 배탈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다 값이 있습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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