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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의보-360] 중국집 주방장을 초대한 선배의 정년퇴임식

2016.07.28 22:32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주제의 대중 매체가 봇물이 터지듯 한다. 그런데 맛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1학년의 수준도 갖추지 못한 나에게는 닿지 못할 미답의 영역이고 배워도 익혀지지 않는 불가능 영역이다.  그러니 요즘 대세의 먹방을 즐기지 못하는 비문화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소외감마저 든다. 


내가 첫 번째 책을 출간했던 5~6년 전의 일이다. 한 유명사립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신 선배께서 고급 중식당으로 부르셨다. 학보사 기자의 선후배 관계는 질기고 끈끈해서 나이와 학과를 불문하고 선후배 간의 관계가 돈독하기에는 어떤 동아리보다 앞선다고 자부하던 차였다. 선배의 전공은 교육학이었지만 부전공으로 노인학을 공부했다고 말씀하시며, 내 전공도 아닌 시니어 분야에서 어렵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밥 한 끼 사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그저 짜장면 한 그릇도 과분할 만하데 이름도 모르는 요리를 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양평에서 즐겼던 이 음식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사진. 김형래]


아주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은 맛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부드럽고 우아한 것이 지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나 싶게 맛있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선배는 음식을 드시면서 이것은 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요리를 했고 어떤 먹는 느낌인지 일일이 꼽아 알려주셨다. 공부만 하시는 학자이신 줄 알았는데, 요리사 버금가는 음식에 대한 식견이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처음 알게 된 그 음식 이름을 잊지 않으려 외우고 또 외웠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그때 그 음식이라고 대답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곧 그 음식의 이름을 잊었다. 어쩌다 그 음식 이름을 생각하려고 기억을 되돌려 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선배님을 연상해도, 그 식당을 연상해도 맛에 무지한 나는 그 음식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어 중국 식당에서 찾았을 때도 메뉴만 샅샅이 찾아보아도 선배와 함께 먹었던 그 음식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그 음식을 잊힐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선배의 연락이 있었다. 그 중국 요리를 사주셨던 선배께서 정년 퇴임을 하신다는 소식이었다. 갑자기 나 혼자 불러서 사주셨던 중국 요리가 생각났다. 후배들을 불러 모아 행사가 진행되는 알렌관 무악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변 주차장은 고급 승용차로 가득 찼는데, 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세울 곳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새로운 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릇을 찾으러 온 모양인데 행사장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사장에 들어섰고 곧바로 밖의 일을 잊었다. 


행사는 순서지에 따라 착착 진행되었다. 등록, 선배의 대학 동창이신 아마도 교육계 거물의 축사 그리고 제자들의 축하 공연…. “죽어도 못 보내~” 하는 노래로 개사해서 선배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선배님의 인사가 있었다. 책 출간 기념을 겸하다 보니 저자 강연의 순서가 이어진 셈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객석에 앉아 계신 한 분을 불러일으키시는 것이다. 순간 아까 밖에서 서성이던 중국집 오토바이 아저씨였다. 


“저분은 제가 건강한 정년 퇴임을 도와주신 가장 소중한 분 중에 한 분이십니다. 맛있는 ‘전가복’을 평생토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어렵게 모셨습니다.”


‘전가복’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자고 잊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음식 이름이 ‘전가복(全家福)’이었다. 음식의 이름이 이처럼 복된 것이 또 있을까? 전복이 들어가서 전가복이 아니고, 가족 모두에게 복을 전해준다는 이름의 음식. 특별한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주방장이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요리라고 들었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선배의 퇴임식에서 본 수십 년 음식으로 다져온 인연의 주인공 중국집 주방장과의 달달한 우정을 생각하면서, 최근 불거진 지도층 동창 간의 범법 행위의 씁쓸한 세태를 덮어볼까 한다. 나 자신이 맛을 모르니, 단맛으로 강한 쓴맛을 쉽게 덮을 수 있을까 고민 또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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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의보-359] '노인(路人)'도 가끔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보아야 한다.

2016.07.18 10:58

시니어는 본인이 살아왔던 길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길의 요모조모를 사진을 그림 그리듯 묘사할 수 있다. 그래서 시니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노인(路人)’이라고도 부르고자 한다. 한때 업무상 구호로 쓰던 ‘길을 아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우마차가 지나던 왕복 1차로의 시골 길을 개척해서 편도 4차로의 대로를 건설한 것이 ‘시니어’의 공로다. 부인하지 않는다. 감히 여기서 길에 서 있고 길을 이용하고 길을 가는 우리 모든 ‘노인(路人)’에게 ‘가끔 가던 길을 뒤돌아 볼 것’을 제안한다.

▲ 겨울서리가 날카롭게 서있던 오르막 내리막이 규칙적이지만 방향은 곧은 추억의 길 / 사진. 김형래

그럼 나는 주행차로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추월차로로 가고 있는가 돌아보자.

편도 2차로에서 ‘추월차로’를 막아선 저속 차량은 도로 전체의 효율성을 낮추고, ‘주행차로’가  ‘추월차로’ 역할을 하게 되는 부조화가 연출된다.

도로교통법으로 고속도로에서 지정차로를 정해 둔 것은 고속도로의 빠른 소통과 안전을 위해 지정된 것이다. 지정차로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운전자에게 불편을 주거나 큰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법으로 풀어보자.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편도 2차로에서 중앙선에 가까운 차로가 1차로가 추월차로다. 1차로는 정속으로 달리기 위한 길이 아니라, 앞지르기 차로다. 앞지르기를 할 때만 이용해야 하는 차로다. 2차로가 모든 자동차의 주행차로다.

그렇다면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1차로로 계속 주행하는 경우, 운전자는 법규를 위반했을까? 위반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지정차로 위반이다.

물론 모든 도로의 1차로가 추월 차로가 아니고, 고속도로에서 1차로가 추월차로다. 그러나 앞차를 추월하는 게 아니라 정속주행을 하시는 분은 1차로를 비워두셔야 하는 것이 맞다.

지난주 귀경길 고속도로에서 도로교통법이 바뀌었는가를 의심할만한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추월차로와 주행차로가 뒤바뀌어, 주행차로로 달리는 차량의 속도가 추월차로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는 장면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는 반복하면서 4~50km 연속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내려놓는다고 하시면서도 추월차로을 고집하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어찌 도로에서만 있는 것이 추월차로일까. 지정차로 위반하지 말고, 주행차로로 차로를 바꾸자.

내가 닦은 길인데, 그렇기에 주어진 나의 기득권이 존재하고 내 영향력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하여 ‘주행차로’가 아닌 ‘추월차로’를장악하고 뒤에서 밀려오는 주니어에게 한 발짝도 앞서지 못하게 길을 막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실제 길거리나 자동차 주행도로에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자. 일말의 수긍의 장면이 떠오른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기 위해서 장소를 나설 때, 행인의 보행에 아랑곳없이 과장된 큰 자세로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불편을 주지 않았는가. 본능적으로 허세를 마다치 않는 것이 세를 과시하지는 않았는지. 볼썽사납고 불편해 보이는 장면으로 앞길을 막지 않았는지.

추월을 방해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앞길을 내주는 행동이 ‘내려놓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노인(路人)'도 가끔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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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의보-358] 경제의 출발은 제한된 자원

2016.06.08 22:50

Apple | iPhone 6 | Normal program | Pattern | 1/128sec | F/2.2 | 0.00 EV | 4.2mm | ISO-32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16:05:27 16:58:32그렌저 9년 그 다음 K7


정말로 감지덕지할 따름이지요. 

저에게는 차가 없습니다.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꼭 필요하다면 좋겠지만, 없다고 견디지 못할 이동수단도 아니기 때문에 소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라이프모델링' 강의할 때, 

"미국 여행 가실 때, 비행기를 사서 다녀오시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곤 합니다. "말도 안되는 비상식의 얘기"라고도 하십니다. 요지는 이런 것이지요.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발상을 바꾸자는 것이자고. 활용방법을 찾는 것. 재미이고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경제란 이런 것이지요. 제한된 재화를 어떻게 잘 배분하느냐의 문제이죠. 

무엇인가 희생해야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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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의보-357] 시니어의 명함 속 직함, 높은 이유 있다

2016.02.04 00:00

시니어 명함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자신 있게 시니어가 퇴직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명함이라며, 이전 직장의 명함을 내밀면서 향수에 빠진 애절한 눈빛을 접고, 새롭게 하고 싶은 일에 걸맞은 명함을 새기라고 충고한다. 스스로 조직인 분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명함에 적혀있는 그것이 본인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시니어의 명함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두 고위직급이나 직책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예비역’이라고 한 계급 올려서 불러들이는 것이나, 재직 당시 최고의 직급 또는 직책을 퇴직 후에도 계속 불러들이는 것보다 훨씬 인플레이션 된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렇게 놓은 직급을 명함에 적어 놓는 것일까? 인간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높은 직급을 명함에 적어놓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인간은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에 있는 욕구가 나타나서 그것을 충족하고 싶고, 그것이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모두 다섯 단계라는 동기 이론의 일종이다. 


SONY | SLT-A77V | Manual | Center-weighted average | 1/125sec | F/2.8 | 0.00 EV | 11.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5:01:08 11:39:18[시니어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자연스런 욕구 충족이다/사진.김형래]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장 아래 단계가 ‘생리욕구(Psysiological Need)’로 인간이 생존을 위한 기초적 욕구를 말한다.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로 의식주부터 시작된다. 그다음 단계가 ‘안전 욕구(Security and safety Need)’인데 신체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다는 욕구이다. 위험이나 빼앗기거나 불안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충족되면 3단계 ‘소속과 애정 욕구(Social Need)’이다. 가족, 친구, 친척 등과 친교를 맺고 타인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이다. 원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귀속되고 싶다는 욕구다. 주변을 살펴보면 주니어보다는 시니어가 모임을 더 많이 하고, 마흔 줄에 들어서면 참석하지 않던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못 이기는 듯이 나가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그다음이 ‘존경의 욕구(Esteem Need)’인데 이제는 자존감을 갖고 타인의 존경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를 계속 발전하게 하고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신을 완성하고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욕구이다. 다른 욕구는 충족되면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매슬로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직장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5층에서 2층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인 셈이다.


그런데 명함이라는 것은 2층에서 3층으로 자연스럽게 올라서게 하는 에스컬레이터인 셈이다. 바로 2층에 있는 안전욕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욕구를 3층 소속과 애정의 욕구 수준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물론 명함에 적혀있는 내용이 허구이면 상상으로 3층에 올라선 것이고, 실체가 있고 그곳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니어가 자주 모이는 것은 바로 3층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인 셈이다. 그래서 시니어에게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이 그들에게 행복을 더해주는 요소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안전욕구 단계에서 소속과 애정의 욕구로 올라서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존경의 욕구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직급을 갖는 것은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과 같이 빠르고 안전하고 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본성적으로 인간은 욕구(Need)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몇 년 사이에 협동조합이 시니어 사이에 모두 겪어야 하는 사춘기의 광풍처럼 매섭게 스쳐 지나갔다. 명함집을 열어보니 당시에 새로 나누어주신 직함이 거의 모두 이사, 이사장 등 고위 직급을 차지하고 있었다. 친한 시니어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간사나 총무 같은 일을 하는 실무자에게도 기본 부장 또는 이사라는 회사로서는 고위 간부나 중역의 직함을 부여한다고 했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업이 되니 안되느니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은 모여서 ‘소속과 애정 욕구'의 충족을 맛본 것이고, 높은 직위를 담은 명함으로 ‘존경의 욕구'가 충족된 것만으로도 사회경제적으로 보는 이득은 크다 할 것이다. 


시니어의 명함에 쓰인 높은 직급이나 직책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자. 현업에서의 책임과 권한도 없고 그에 따르는 복리 후생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순수한 욕구 충족의 아름다운 시도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쯤은 망설이고 주변 시선을 의식했을 터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인정(認定)하는 인정(人情)도 필요하다. 


시니어에게 부탁이 있다면 일만 있으면 “사장 나와!” 같은 상황적 오해를 접으셨으면 한다. 냉장고 망가졌다고 본사의 사장님이 집으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명함에 적힌 동급의 직책자를 당장 나오라고 찾으시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안 그럴 것이라고 하실지 모르나,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한국 사회는 시니어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4층 욕구인 ‘존경의 욕구'가 작동함을 알고 있지만, 애써 받아내려는 모습은 안타깝게 보이고 체면이 구겨진다는 반작용도 고려하심이 좋을 듯하다.


주변에 높은 직위로 새 명함 새긴 분이 계시다면 굳이 비난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격려하자.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시도는 아직 젊고 건강한 도전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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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의보-356] 은퇴 준비는 '조삼모사(朝三暮四)'가 기본이다

2016.01.28 00:00

은퇴를 위한 경제적 준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대답이 마땅치 않다. 어쩌다 답을 들으면 좋은 얘기라는 덕담으로만 들릴 뿐,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오리무중에 빠지곤 한다. 물론 잘하면 되고, 잘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갓 코미디로 웃고 넘길 농담이 아니다. 심각하게 할 대목에서는 정색하고 짧은 시간 집중해서 문제를 쪼개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녀에게 잔소리하더라도, 후배에게 충고하더라고 기본을 갖추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로 방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능력대로 살면 되지, 뭐 그리 사서 고민을 하는가? 라는 여유로운 말씀도 듣는다. 그런 분은 그냥 남의 일이거니 하시면서 지나치시면 된다. 정작 고민이 되는 분을 무대책이라는 올가미로 끌고 나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심정을 가졌다면, 어리석은 대답을 통해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도 조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의 사정은 내가 모르기에 쉽게 단정하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친한 동창이 있다. 한 날 한 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현장에 취직해서 30년간 일하다가 명예퇴직 후 만나보니, 퇴직 후의 삶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고 서로 놀란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조선회사에서 퇴직한 분은 퇴직 후 걱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용접을 30년간 하다 보니 그 기술이 신공에 가까워서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널려 있더란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친구는 조립라인에서 볼트만 30년 조이다가 퇴직을 하니 그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더라는 것이다. 


SONY | SLT-A77V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30sec | F/2.8 | 0.00 EV | 50.0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15:08:11 06:21:02[은퇴 준비도 네이게이션처럼 정확하게 안내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김형래]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은퇴를 대비하는 ‘조사모삼(朝四暮三)'이 아니라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공통의 사자성어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우리는 그래봐야 일곱 개일 뿐인데, 원숭이가 아침에 3개보다 4개를 반갑게 받아들였다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 교훈은 이해도 잘되고 공감도 잘되니 하찮게 바라보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은퇴 후 생활이 막막하다며 버는 만큼밖에 못 쓴다고 하는 한 30대 가장의 소비 패턴을 보면서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아침에는 자신을 위한 격려라며 초록색 마크의 유명 커피를 매일 왼손에 들고 출근하고, 고작 1년에 일주일 다녀올 수 있는 여건임에도 글램핑한다고 저렴하게 샀다는 장비만 천만 원에 육박하고, 사회적 관계를 위해서 골프장도 한 달에 한 번은 나가고 있단다. 그의 소비 생활전부는 알 수 없었지만, 앞서 언급한 정도의 생활 수준이 집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면 월급이 남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분명히 어려울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월급이 같더라도 평균수명 70대의 시절을 사는 이와 평균수명 80대를 사는 이의 소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생 소득이 같은데, 나누어서 써야 할 기간이 길어진다면 줄여서 나누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삼모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어서 적게 써야 오래도록 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얼마를 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 가족마다 구성이나 소비 행태가 다르기에 가늠하기 어렵기에 ‘집집이 달라요.’라고 직답을 피해 가야 하지만, ‘젊어서 많이 쓰고 늙어서 아껴 써야지.’라는 전략이 아닌 ‘젊어서 아껴 써야 일할 수 없는 때에도 쓸 게 남아 있다.’라는 전략이 정답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모삼'이 아닌 ‘조삼모사'가 은퇴 준비의 기본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곱 개의 도토리를 가지고 원숭이의 아둔함을 비유로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질타하는 얘기로만 알고 있던 ‘조삼모사(朝三暮四)’ 누구를 빗대기 어려우니 말 못하는 원숭이를 제물로 삼아서 만든 고사성어. 


“네 평생 소득이 일곱인데, 젊어서 셋을 쓰겠는가? 아니면 젊어서 넷을 쓰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젊어서 셋을 쓰겠다.”라는 것이 정답이다. 다시 말하자만 은퇴 준비는 ‘조삼모사'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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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시니어파트너즈가 운영하는 유어스테이닷컴에 게재됩니다. 

https://www.yourstage.com/column/columview.aspx?thread=9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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