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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년 03월 07일 '고쿠다이' 국민적 정서가 있는 일본인

'고쿠다이' 국민적 정서가 있는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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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은 지금 "마쓰리"의 하나로 건물입구에 이런 인형들을 잔뜩 진열하고 있다. 이유야 모르지만 화가 난 인상이다.


일본인들에게는 ‘고쿠다이’라는 국민적 정서가 여전히 존재한다. 고쿠타이(國體)는 천황이 통치하는 특별한 국가라는 의미로, 민족주의적 우월감을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은 일본인들의 대중적인 출판물과 언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일본이 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각 언론 매체들은 다음과 같은 허위성 논지를 발표했다. 즉 외국산 스키 신발의 수입을 거절하면서 ‘일본의 눈(雪)’은 외국의 눈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했고, 육류의 수입을 거절하면서는 일본인의 소화기관이 다른 민족의 소화기관에 비해서 더 길다는 이유를 댔다.

일본의 외교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가치관에 기인한 기회주의와 실용주의 노선으로 볼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일본인들은 승리를 거두는 말에 앉고자 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일본은 영국과 더불어 독일과 동맹을 맺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프랑스를 지지하는 부류가 많았음에도 점차 강해지던 독일을 선택했다. 독일과의 동맹은 일본의 의학, 자연과학, 산림학, 음악뿐 아니라 특히 군사 영역과 법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독일은 일본이 점차 세력을 확장시키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5년 4월 17일, 일본이 중국과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하자, 러시아, 프랑스와 더불어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요동 지역을 포기하라’고 일본에게 강요했다(3국 간섭). 일본은 곧 독일에 보복조치를 취했다. 1914년 8월 15일, 중국에 있는 독일의 점령지를 빼앗고, 칭다오에 있던 독일 요새도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시 독일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일본의 기회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루었다. 패전 이후 일본은 경제를 재건하는 것과 더불어 국제적인 고립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래서 미국의 보호를 자청했고, 이후 교류를 지속시켰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자 보호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는 미군 기지를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이후 일본은 조금씩 군사적인 역할을 떠맡기 시작했다. 북한으로 인해 그러한 과정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사실 일본인들의 '고쿠다이'가 두려워 그들과의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항시 경계도 해야 할 정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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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 여호수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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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7, 2007 23:34 03 7, 200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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